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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강감찬 생가터

강감찬 생가터

고려의 명장 인헌공 강감찬 장군(948-1031)이 태어난 집터이다. 태어난 날 하늘에서 큰별이 떨어졌다 하여 그 생가의 터를 '낙성대'라 했다. 그곳에는 고려시대의 사리탑식 3층석탑이 있어 낙성대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1973년 낙성대를 정화하면서 이 석탑을 안국사 경내로 옮기고 그 자리에는 1974년에 따로 높이 2m의 유허비를 세워 유서 깊은 사적지임을 표시했다. 따라서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를 성역화한 곳은 낙성대이지만 장군이 태어난 곳은 유허비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현재 낙성대 동북쪽에 위치한 봉천7동 218번지 14, 19호 일대이며 대지면적은 33평으로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 문화재명: 강감찬 생가터
  • 지정번호 : 기념물 제3호
  • 지정연월일 : 1972년 5월 25일
  • 소재지 : 관악구 낙성대동 218-14번지

낙성대 3층석탑

낙성대 3층석탑

낙성대동 228번지 안국사 경내에 강감찬 낙성대라 새겨져 있는 사리탑식의 3층 석탑으로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봉천동 218번지 집터에 있었으나 낙성대 공원 조성시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 이 석탑의 조성연대는 고려시대(13세기경 추정)로 자재는 화강암이며 탑의 높이는 4.48m.

  • 문화재명: 낙성대 3층석탑
  •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4호
  • 지정연월일 : 1972년 5월 25일
  • 소재지 : 관악구 낙성대동 228번지

시지정보호수

보호수란 노목, 거목, 희귀목으로서 명목, 보목, 당산목, 정자목, 호안목, 기형목, 풍치목 등 보존가치나 증식 가치가 있는 수목을 말하는 것으로 관악구에 소재하는 보호수는 다음과 같이 세 그루가 있다.

느티나무(동 나무 제37호)
  • 봉천동 715-20호에 위치한 정자목으로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5.3m이며 수령은 약 300여년으로 추정.
느티나무(동 나무 제39호)
  • 신림동 697-40호에 위치한 정자목으로 높이 17m, 가슴높이 둘레 5.2m이며 수령은 약 350여년으로 추정.

마애미륵불

마애미륵불

관악산 북쪽 중턱에 서향하여 우뚝 솟은 거대한 절벽 바위면에 얕은 도드락 새김으로 조각된 조선시대의 미륵불 좌상. 낮은 육계, 소방의 머리칼, 다소 풍성하게 보이는 갸름한 얼굴 등은 상당히 우수한 기법을 보여준다.

이는 늘씬한 체구나 타원형의 어깨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17세기 불상으로서는 뛰어난 솜씨로 조선조 조가사편년 설정에서 절대적인 자료가 되며 또한 미륵존불이라는 명문은 확실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7세기 조선조 사회에도 미륵신앙이 상당히 유래되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이 마애미륵불은 17세기 조선조 불상을 대표하는 기준이 될 만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 문화재명: 마애미륵불
  •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49호
  • 지정연월일 : 1982년 11월 23일
  • 소재지 : 관악구 인헌동 4-9번지

정정공 강사상묘역

정정공 강사상묘역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세워진 정정공 강사상(1519∼1581)의 신도비. 선생은 1543년(중종 38년) 사마시에 합격하고,1546년(명종 1년) 식년문과에 병과급제하여 한림이 되어 수 많은 관직을 거쳐 우의정과 영중 추부사를 지냈으며, 사후 아들 인이 호성공신에 책록되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선생은 강홍립 장군(1570∼1627)의 조부로서 1561년에 명나라 성절사, 1568년 명나라 성절사, 사신 원접사, 1570년 명나라 주청사로 활동하는 등 외교에 역할이 컸으며 평상시 국가의 치란은 천운에 있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여 정쟁에 초연하였다. 신도비문은 권유가 짓고 본문은 이진검이, 제목은 권규가 썼다.

  • 문화재명: 정정공 강사상묘역
  •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104호
  • 지정연월일 : 1997년 12월 31일
  • 소재지 : 관악구 난곡동 산 107-2번지

효민공 이경직묘역

효민공 이경직묘역

조선 현종 9년(1668년)에 세워진 효민공 이경직(1577∼1640)의 신도비. 선생은 백사 이항복과 사계 김장생의 제자로 1605년 식년시와 증광별시에 잇달아 합격한 후 전시에 응시하여 승문원에서 처음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강화유수로 있다가 병사할 때까지 도승지, 호조판서 등 많은 관직을 거쳤다.

1617년(광해군9년) 일본에 회답사의 종사관으로 다녀오고, 1642년(인조2년) 이괄의 난 때 전라절도사로 공을 세우고, 1627년(인조5년) 정묘호란때 병조참판으로서 후금국 사신과 교섭하여 화의를 성립시켰다. 신도비문은 김류가 짓고 글은 삼남인 정영이 썼으며 공의 묘소는 이 묘역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 문화재명: 효민공 이경직묘역
  •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105호
  • 지정연월일 : 1997년 12월 31일
  • 소재지 : 관악구 남현동 산 57-48번지

백제요지

면적 661.16㎡(200평) 규모의 백제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요지는 발견당시 채집한 격자문 토기편들로 미루어 백제시대의 가마터로 확인되어 1976년 4원 10일 사적 247호로 지정되었고, 가마는 파괴되어 있으나 한강변에 있는 백제토기 가마터로는 유일한 것이다.

한강변의 바람드리토성·곰말토성·삼성산성·강 건너 야단산성 그리고 백제 돌무지 무덤·방이동 고분군등과 아울러 주목되는 유적지로서 백제시대 문화 및 삼국시대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유지인 밭에 위치하고 있는 이 가마터는 현재 발굴되지 않은 상태로 보전되고 있으며 약 200평 면적에 흑토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있는 곳은 신라토기의 요지로 추정된다.

  • 문화재명: 백제요지
  • 지정번호 : 사적 제247호
  • 지정연월일 : 1976년 4월 10일
  • 소재지 : 관악구 남현동 538-1번지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

남현동 남부순환로변의 길가 사거리 가까이 있는 건물로서 1900년 5월 우리나라에 온 벨기에 전권위원인 방카르에 의해 1903년 착공하여 1905년에 준공된 건물로 원래 지어진 곳은 중구 회현동 2가 72번지 2호였으나 198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1919년 벨기에 영사관이 이전하면서 일본 요꼬하마 생명보험회사의 사옥이 되고 일본 해군성 무관부의 관저로, 해방 후에는 해병 헌병대 청사로 사용되었다.

1970년 상업은행에 불하된 후 1982년 9월 10일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현재 한빛은행 사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지하1층, 지상2층으로 벽돌과 석재를 혼용하면서 현관과 발코니의 이오니아식 석주 등은 독특한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 문화재명: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
  • 지정번호 : 사적 제247호
  • 지정연월일 : 1977년 11월 22일
  • 소재지 : 관악구 남현동 1059-13번지

신림동 굴참나무

신림동 굴참나무

신림동 굴참나무는 참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이며 높이 17m, 가슴높이 둘레 2.5m가량 되는 노거수로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로 지정. 전설에 의하면 약 1,000년 전에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서 현재와 같은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인근에는 장군이 별당으로 사용하였다는 칠불사가 있으며 수령은 약 1,000년 정도로 추정한다. 그리고 연2회 음력 7월 1일과 10월 1일 수명보존(목신)과 동리의 평안을 위하여 고사를 지내고 있다.

  • 문화재명: 신림동 굴참나무
  •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 271호
  • 지정연월일 : 1982년 11월 4일
  • 소재지 : 관악구 난곡동 721-2번지